THE THREE VISION OF WAEGWAN METHODIST CHURCH
"열정, 나눔, 행복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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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관감리교회
    2021-03-05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은 추수를 끝낸 후에 맞는 절기입니다. 추수를 마친 시기의 명절이라는 점에서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그보다는 언약을 갱신하며 새 해를 맞는다는 취지가 더 큽니다. 이레 동안 이어지는 명절 내내, 유대인들은 집에서 벗어나 야외에 초막을 만들고 그곳에 기거하면서, 가나안 정착 이전의 광야의 삶을 경험하고 당시에 맺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합니다.   초막절을 대표하며 매일 진행하는 의식으로 ‘물 봉헌’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백성들이 모여 뿔 나팔을 불고 나뭇가지 다발을 흔들고 크게 환호하면서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 와서 제단에 바치는 의식입니다. 오래 전 사십 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목마름이란 가장 일상적이고도 절실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추수를 마친 시기임에도 초막절에 추수한 곡식 대신에 매일 물을 봉헌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회상하는 …
    왜관감리교회
    2021-02-27
    외교 정책 중에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끼리 가까워도 안 되고 멀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3장 1절~21절에 나오는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인 듯합니다. 그는 인생살이의 의문과 영혼에 대한 갈증이 있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해답을 얻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만남 후에 예수님의 권유대로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도 그렇다고 멀리도 하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둔 모습으로 보입니다.   니고데모가 처한 문제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평안한 삶은 보장받고 싶지만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은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임의로 취사선택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물과 성령…
    왜관감리교회
    2021-02-20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문명사회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사회에도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법적으로 인격이 없는, 말하는 물건이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노예는 집안일이나 광산, 농장, 수공업, 격투기, 뱃일 등에서 필요했습니다. 외출한 주인이 돌아오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 주는 것도 노예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3장 1절~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시던 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녁을 드시던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 주신 것입니다. 로마의 노예제도를 잘 알고 있었던 제자들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베드로는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며 강력하게 거부하기까지 했습니다. 노예가 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시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발을 씻기려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가장 더러운…
    왜관감리교회
    2021-02-13
    우리는 선과 악이 공존하여 문제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삶에 평화와 안식이 있는 것은 부활하셔서 어둠을 이기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결단과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평화와 기쁨을 누리려면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면서 청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8장 1절~8절 말씀에는 삶의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 재판관과 과부가 등장합니다. 우선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람도 무시하는 인물입니다.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 시대였으므로 아마 그는 유대에 파견 나온 로마 관리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평소에 사람을 업신여기는 관리였다면 식민지 백성에다 가난하고 권력과 무관한 과부에게 어떻게 대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과부가 등장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 여인…
    왜관감리교회
    2021-02-06
    사도 바울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말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며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은혜는 ‘카리스(charis)’인데, 영어로는 그레이스(grace)로 ‘은혜’, ‘너그러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대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시시비비를 가리신다면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일본 나고야에 그리스도성서신학교를 설립한 마이클 오(오영석)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국제 로잔 운동의 최연소 총재로 선출되어 헌신하고 있는 그는 저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관감리교회
    2021-01-30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형상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을 손을 내미는 장면으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아담이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에 닿는 순간, 흙으로 만들어진 미천한 피조물이 하나의 인간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닿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끝이 닿는 순간 우리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40장 1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와 장차 이루어질 회복의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없는 세상, 어려움이 없는 희망의 삶을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아픔이 찾아와도 희망을 갖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
    왜관감리교회
    2021-01-23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건축할 때 특별한 의례를 행했습니다. 피라미드의 중심점이 될 장소에 타조 깃털을 놓고 종교의식을 치른 것입니다. 이 때 사용한 타조 깃털을 이집트인들은 ‘마아트’라고 불렀습니다. 230만 개의 돌덩이를 쌓아 올린 피라미드의 중심점은 뜻밖에도 불면 날아가는 깃털 하나였습니다. 이후 종교학에서는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마음가짐을 ‘마아트’라는 용어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 역시 피라미드를 짓는 일 못지않은 엄청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점을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바른 중심을 잡고, 그 중심점에서 비뚤어지지 않으면서 삶을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마아트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생 성공의 비결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0장 12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마아트’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
    왜관감리교회
    2021-01-16
    만약 우리가 미래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지금의 삶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병에 걸릴 것을 안다면 건강을 부지런히 챙길 것이고, 사고가 있다면 미리 조심하고 대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장래의 우리 모습을 보여 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풍성한 삶을, 자기 욕망을 따라 살면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아모스 5장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10퍼센트만 살아남고 그 남은 백성조차 노예로 팔려간다고, 즉 나라가 곧 멸망한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예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벧엘, 길갈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스스로 만든 금송아지, 가짜 …
    왜관감리교회
    2021-01-09
    기독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오순절 사건에만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시면서 창조의 역사에도 동참하셨고,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시는 과정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에도 함께하셨으며, 지금도 성도들과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 사역을 이루는 길에 언제나 성령님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으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어 갈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 모든 사명을 이루게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11장 1절~5절 말씀에서 성령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
    왜관감리교회
    2021-01-02
    교회는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부어 주셨던 불같은 성령의 임재는 거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고, 진리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성령의 임하심은 이미 구약성경 요엘서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민족과 열방의 백성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도 표적과 놀라운 일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증언합니다(롬15:19). 요엘 선지자는 계속해서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예언합니다. 어린 자녀들과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
    왜관감리교회
    2020-12-26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4월 히틀러가 사망한 후 그해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이 긴 전쟁의 승리의 기회가 연합군 쪽으로 기운 것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1944년 6월 6일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입니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 작전을 이끌었는데, 독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전이었기에 준비 기간만 일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런데 작전 바로 전날 밤, 폭우와 안개로 작전 실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연합군에게 불리했기에 더 연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이 않았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아이젠하워 장군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놀랍게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성공했고, 이후 채 일 년도 안 되어 독일은 연합군에게 항복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던 아이젠하워는 전쟁이 끝난 뒤에…
    왜관감리교회
    2020-12-19
    어느 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제지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공장 안에 휴지 같은 너저분한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여왕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깨끗하고 좋은 종이가 될 원료들입니다.” 공장장의 설명을 들은 여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저렇게 더러운 것들로요?” 궁전으로 돌아온 여왕은 며칠 후 그 공장장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편지지 묶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공장장의 편지 끝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쓸모없이 보였던 종이들이 아름다운 편지지로 변화되어 지금 여왕 폐하의 궁전에 가 있듯이, 완악한 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면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때에 하나님 나라 궁전에 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회복과 구원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역사를 멸하시고 구원과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왜관감리교회
    2020-12-12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랑게르한스섬의 오후](1986)라는 수필집에서 유래했다는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갓 구운 따끈한 방을 손으로 찢어서 먹을 때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일본 버블경제 붕괴 후 침체된 경제 상황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심리가 반영되어 만들어진 말이라고 합니다. ‘소확행’이라는 말과 함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 중에 ‘휘게’라는 말도 있습니다. ‘휘게(hygge)’라는 말은 ‘편안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아늑한 시간을 뜻합니다. 일상에서 찾는 작은 행복으로 팍팍한 삶을 위로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삶이 반영된 말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시편 19편 7절~11절까지의 말씀은 불안정한 세상에서 작고 소소한 행복이 아닌, 크고 확실한…
    왜관감리교회
    2020-12-04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차이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세상 종교들이 선한 행위를 통해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나아가려고 하는 노력인 반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신 기쁜 소식(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2장 4절~8절에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8절, 새 번역).”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원천이며,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헬라어 ‘카리스’로, 이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푸는 호의를 뜻합니다. 즉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죄와 허물로 죽은, 자격 없는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데다가 마귀의 세력에 짓눌려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죄인에게…
    왜관감리교회
    2020-11-28
    결혼반지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그 반지의 가격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결혼반지는 그 안에 담긴 어떤 사랑의 이야기로 인해 가치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슬플 수도 있고, 역경이 담겨 있을 수도 있으며, 행복으로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이야기의 힘은 어떤 것의 가치를 올려 주는 데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34절에는 초라한 이야기를 가진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 여인에 대해 알게 되는 사실은 그가 중병으로 큰 고통 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당하고 있는 고통은 12년간 계속된 것이었고, 마가의 증언에 따르면 많은 의원들에게서 괴로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가진 모든 것을 허비해 버렸습니다. 재산을 치료비에 다 써버렸지만 차도가 없었으니 그 결과에 얼마나 큰 실망감이 있었겠습니까? 사실 이 여인은 여러모로 무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리 사이에 끼어 있다가 예수님 뒤로 살며시 접근합니다. 문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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