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REE VISION OF WAEGWAN METHODIST CHURCH
"열정, 나눔, 행복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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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관감리교회
    2019-10-12
    누구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앞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이라며 매주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복을 쫓아다닌다고 해서 복이 내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셔야 합니다. 시편 24편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입니까?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사람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손이 깨끗하다 것은 정결한 사람을 뜻하며,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의로운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또한 허탄한 생각을 하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으며, 이익을 위해 거짓 행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자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예배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이 복의 문을 여는 사람임을 …
    왜관감리교회
    2019-10-05
    신약성경 디모데전서 5장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 자인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교회를 치리하는 것과 관련된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연로하신 남자 어르신은 아버지로, 젊은이는 형제로, 연로하신 여자 어르신은 어머니로, 젊은 여자는 자매로 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의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처럼 대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교회에 새로운 성도가 출석을 하게 되고 새 가족으로 등록을 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기존의 성도들이 이런 저런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서 새 가족의 입장에서는 교회가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지만 시간이 좀 지나게 되면 성도들의 관심이 좀 무디어지면서 어느새 가족처럼 느꼈던 감정들이 식어들게 되면서 갖…
    왜관감리교회
    2019-09-28
    한 목사님이 다른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낯선 도시로 갔습니다. 근처까지 갔는데도 교회 건물이 보이지 않자 목사님은 지나가는 노인에게 교회 위치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바로 뒤에 놔두고도 모르냐면서 손가락으로 저 너머를 가리켰습니다. 목사님은 감사 인사를 하며 노인에게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어 교회에 오시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꾸했습니다. “바로 뒤에 있는 교회도 모르면서 천국 가는 길을 어떻게 알아?” 바로 그 길을 알려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성서를 잘 아는 성경학자, 말씀을 잘하시는 랍비,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분, 사치나 겉멋을 위한 몸치장 옷단장을 안 하신 분, 사회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인 죄인과 언제나 함께 하신 죄인의 동반자.” 로저 테넌트 선교사는 그의 책 [참 인간의 길]에서 예수님의 위대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왜관감리교회
    2019-09-21
    예레미야 24장의 말씀을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개의 광주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광주리들이 성전 앞에 놓여 있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아주 좋은 무화과가 담겨져 있었고, 다른 광주리에는 상태가 너무 나빠 먹을 수조차 없는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두 개의 광주리에 담긴 서로 다른 무화과에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좋은 무화과를 두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잘 돌볼 것이라.” 그리고 나쁜 무화과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과 이집트 땅에 사는 자들은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같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간 일은 괴롭고도 슬픈 형벌이었습니다. 그런 아픔과 혼란 중에서도 용케 예루살렘에 남거나 이집트로 도망친 이들은 천만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주님의 은혜로 생각하며 붙잡혀간 이…
    왜관감리교회
    2019-09-13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이웃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웃집 주인은 아이에게 인사를 하며 사과를 한 개 건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해야지.”하며 인사를 시킵니다. 그런데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엄마가 대신 해!” ‘교육’은 한자로 ‘가르칠 교’(敎)에 ‘기를 육’(育)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가르치고 기르는 행위의 결합이라는 뜻입니다. ‘교’(교)가 ‘학습’이라면, ‘육’(육)은 ‘돌봄’입니다. 학습을 통해 지적으로 충만해지고, 돌봄을 통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학습만 있고 돌봄이 없는 기형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사역을 하는 교목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듣게 되는 가장 슬픈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필요 없는 공부’ 혹은 ‘필요 없는 과목’이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당…
    왜관감리교회
    2019-09-07
    79세 할아버지가 평생 잊지 못할 꿈을 꿨다고 합니다. 군 시절에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 병이 80세의 모습으로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당장 이리로 뛰어오라고 소리치는데, 비록 꿈이지만 정말 무섭더랍니다. ‘군대’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계급, 질서, 규율, 단체, 조직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입대하는 꿈은 악몽이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십분 공감하게 됩니다. 문득 우리가 꿈꾸는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읽을 때 우리는 대부분 달란트에 초점을 맞춥니다. 받은 달란트의 수와 이익으로 남긴 수를 셉니다.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한 달란트 가진 종에게 화가 난 이유는 더 많이 남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
    왜관감리교회
    2019-08-31
    구약성경 이사야 49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치 엄마가 아이를 태중에서부터, 그리고 태어난 후 젖 먹이고 양육하며 품속에서 놓지 않고 돌보는 모성애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제한적인 모성애가 아닌 초월적인 모성애입니다. 이사야서 49장의 말씀을 읽어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다가 자녀임을 확인하고, 회복과 실현에서 감탄의 구조로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나갑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시온(유다 백성)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젖먹이를 둔 엄마가 아이를 잊지 않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시온을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합니다. 이는 항상 가까이하여 지켜보신다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모성애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시27:10, 새 번역)라는 구절로 드러냅니다.  17절에서부터는 …
    왜관감리교회
    2019-08-24
    다윗의 시 중에서 시편 40편만큼 위험하고 절박한 고비를 넘은 승리를 노래한 시도 흔치 않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1절) 시인의 고백은 자신이 얼마나 길고 험난한 시간을 견뎠는지 보여 줍니다. 웅덩이에 빠진 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초조하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공포가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간증입니다.  그가 겪은 고난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갇힌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서 끌어올리시고, 그 발을 반석 위에 두셨습니다. 그의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반석은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터입니다. 웅덩이에서 발버둥 칠수록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죽음의 위협이 다가왔었습니다. 그러니 반석에 발을 딛는 순간,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을까요? …
    왜관감리교회
    2019-08-17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눈과 귀를 막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데서 모든 갈등과 오해와 다툼은 시작됩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갈등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우상 앞에 바친 제물을 먹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 중에 한 무리는 우상 숭배로 더러워진 고기는 먹을 수 없다고 하고, 또 다른 한 무리는 그것이 신앙의 본질과 무관하다며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상이란 본래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말하면서 우상에 드린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새 번역)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와 의견이 다르면 자…
    왜관감리교회
    2019-08-09
    기도를 하다 보면 쉽게 응답받는 기도가 있는 반면, 과연 응답이 이뤄질까 반신반의하게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렇게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기도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샘솟지만, 혹시라도 응답이 늦어지면 시험에 들거나 절망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절망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소망을 잃게도 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다 백성이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간 유다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죄악 가운데 살았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며 자신들의 삶을 한탄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회복의 희망을 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죄의 삶에서 정결하게 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
    왜관감리교회
    2019-08-03
    인간은 누구나 고난을 겪습니다. 다만 그 고난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가 사람마다 다를 뿐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나라를 통일한 왕이라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에게 배울 점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신앙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낙심을 하고, 반대로 모든 일이 계획보다 잘될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다윗은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의 상황에서 사람이나 물질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며, 그분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자신의 고난은 끝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여 자신의 죄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돌아보았습니다.  시편 25편의 말씀을 보면 지금 다윗은 자신이 처한 문제가 결코 자기 스스로 해결할 만한 문제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피할 곳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
    왜관감리교회
    2019-07-26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불순종으로 인한 고난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인자한 손을 붙들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만나는 고난과 시련은 신앙인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보다 더 무거운 숙제를 안겨 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고, 모든 일에 실수하지 않으시는 완전한 사랑이신데 내가 그 의로움과 사랑을 의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영적인 고뇌입니다. 욥도 이 문제로 깊은 고뇌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로 숨어들어갔던 아담의 전철을 밟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풀리지 않고 자기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취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과 ‘오직 믿음으로’의 신앙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구하는 욥을 의인이라고 인정하시…
    왜관감리교회
    2019-07-20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를 세상의 초등학문과 한통속으로 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성도들을 나무랍니다.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복음을 알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거늘 왜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의 종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여기서 초등학문은 당시 대표적인 사상인 스토아철학을 말합니다. 즉 초등학문은 세상학문, 세상가치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학문과 세상가치를 따라 삽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세상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초등학문의 종이 되어, 세상을 따랐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며 세상 것들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유업,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이제는 세상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었는데, 다시 세상가치를 따라…
    왜관감리교회
    2019-07-13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는 것은 놀라운 능력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면 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 마음을 몰라주면 그것만큼 서운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명령을 어기고 양 떼와 소 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처지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만약 자녀에게 청소를 부탁했는데 청소는 안 하고 엉뚱하게 부모님을 위해 요리를 하겠다며 집을 더 어지럽힌다면, 부모로서는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속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왜관감리교회
    2019-07-05
    한 해의 절반을 지나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까? 생각해 보니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조르기만 했지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린 기억이 별로 없음을 깨닫습니다. 위기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였고 주신 은혜로 해결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위기를 넘기고 나면 그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성도들은 대부분 새로운 해를 말씀 읽기와 기도로 시작합니다. 1~2월은 영적으로 무장되었기에 웬만한 시험은 다 이겨냅니다. 하지만 3~4월부터는 영적 유혹과 시험들이 주님을 향한 발걸음을 흔듭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5월부터는 농촌이든 도시든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들에 에워싸여 겨우 견디어 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한 해의 절반을 마치며 맥추감사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칠칠절에서 유래한 맥추감사절은 반년동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과 큰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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