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REE VISION OF WAEGWAN METHODIST CHURCH
"열정, 나눔, 행복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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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관감리교회
    2020-04-04
    에스겔은 주전 598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두 번째 침략하여 일만 명 이상을 포로로 끌고 갈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가 25세였는데, 포로로 끌려간 지 5년 후에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을 때,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선포하도록 들려주신 말씀에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구절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표현의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에스겔서 전체에 대략 58회나 등장하고, 6장에서만도 4회나 반복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이 표현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예루살렘이 비참하게 멸망당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체험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왜관감리교회
    2020-03-28
    은퇴를 앞둔 수도원 원장이 젊은 수도사 두 명에게 과제를 주었습니다. 닭 한 마리씩을 주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한 수도사는 뒷산으로 올라가서 즉시 닭을 잡아 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수도사는 저녁이 되어도 닭을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원장은 그에게 왜 닭을 잡지 못하였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는 아무도 없는 곳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수도원 뒤뜰에도 주님이 계시고, 뒷산에도 주님이 계시고, 깊은 산 속에도 주님이 계셔서 닭을 잡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원장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으로 그를 수도원 원장으로 세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 바른 신앙인이요 영적인 건강함을 지켜가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12장 1절~21절까지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삶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나…
    왜관감리교회
    2020-03-21
    누가복음 11장 1~4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5~13절에서는 비유를 통해 기도 응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비유에서는 한 친구가 한밤중에 찾아와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친구가 여행을 하다가 왔는데,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여러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행위가 제시됩니다.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8).” 그가 ‘간청’했기에, 그 간청함을 통해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더욱 확신을 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9).”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삶의 여러 상황과 다양한 이유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
    왜관감리교회
    2020-03-13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기에 나는 존재한다.”라고 믿음의 명언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전은 혼돈과 흑암과 무질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하시며 빛을 창조하셨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나누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빛과 어둠이 나뉘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이 나뉘고, 바다와 육지가 나뉘고, 낮과 밤이 나뉩니다. 인간과 동물이 나뉘고, 남자와 여자가 나뉘고,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이 나뉩니다. 그리고 창조주와 피조물이 구별되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모든 존재들은 제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고유한 자리와 역할이 주어지게 되었고, 그 역할을 제대로 잘 감당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아름다움이 될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었습니다…
    왜관감리교회
    2020-03-07
    『달님 안녕』이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그림책 작가 하야시 아키코는 1973년 작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동서양의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의 감정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사물과 세상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는 어린이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에서 비롯합니다. 이렇듯 상대를 사랑하면 그에 맞는 방법으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게 된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은혜를 주셨는데, 어떤 은혜들일까요? 첫째, 모든 언변과 지식에 풍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즉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능력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평가하는…
    왜관감리교회
    2020-02-29
    사순절 첫째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회개와 비움과 정화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비우고 정화해야 할 것은 우리의 죄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 신앙의 여정에서 내 길만이 옳다는 딱딱하게 굳어진 신앙적 사고와 습관도 다시금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무뎌진 우리의 신앙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를 바라보며 정성스레 사순절을 통과하면 우리는 어느새 하나님 품 안에서 아기처럼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미 가진 것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신앙의 열매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55장 6절~8절까지의 말씀은 탕자의 이야기와…
    왜관감리교회
    2020-02-22
    생각하지 못한 순간, 인생에는 여러 가지 고난과 위기가 찾아옵니다. 가시덤불과 찔레 사이를 걸어가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르막길을 한없이 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깊은 웅덩이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런데도 도와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 웅덩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맡은 사람, 말씀을 취사선택할 권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은 백성들의 귀에 쓰디쓴 말들이었고, 백성들은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예레미야를 물웅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웅덩이에 던져진 때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BC587년 8월에 함락되었으니 6월이나 7월쯤으로 짐작이 됩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 갈수기이니, 정상적이라면 물웅덩이에 물이 절반쯤 차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웅덩이에 던져졌을 때 그 속에는 ‘물이 없고…
    왜관감리교회
    2020-02-14
    한 선배 목사님이 쓴 글에서 본 내용입니다. “언젠가 한 장로님께 ‘요즘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십자가를 타고 다니려고 한다.’는 걱정 섞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도들을 참 신앙으로 이끌어야 하는 목사로서, 정말 가슴을 저릿하게 찌르는 비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주님을 따르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말씀으로서 깊은 공감을 주는 말씀으로 지금까지도 마음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말씀에서 주님을 따르는 자세에 대해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면서 그 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지만 그 과정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는 주님의 또 다른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따르는 길은 쉽고 평안한 길이 아닙니다. 좁고 험난한 길, 자신을 …
    왜관감리교회
    2020-02-08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잘하면 아랫사람도 따라서 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래로 흘러가는 물이 거쳐 가는 곳마다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시대를 움직이는 문화는 파괴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탁류와도 같아 보입니다. 작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버닝썬 사태’가 과연 어제 오늘에 생겨난 일이겠습니까? 이 일은 특정 개인의 문제에서 한참 더 나아간 사회 전반의 문제일 것입니다. 책임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탐하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합작품이 바로 이 괴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회복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충격과 혼란에 휩싸여 살아가던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회복의 현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 놀라운 회복은 성전 문지…
    왜관감리교회
    2020-02-01
    현대 사회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일 중에 하나가 권위의 붕괴입니다.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었던 지난날,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와 문화가 달라지면서 이제는 구시대의 케케묵은 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존의 권위들이 무너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들을 대체할 새로운 권위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러르며 따를 만한 존재가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권위와 존중이 사라진 사회에서 교회와 목회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조직적으로 반대 활동을 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일부 대형 교회와 목회자들이 보인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참담한 마음입니다. 또 한편에서는 주의 길을 결단한 신학생들마저 크게 줄고 있다니 걱정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
    왜관감리교회
    2020-01-24
    감리교회 신앙인으로 기도의 본을 보여 준 이용도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 친구와 함께 산에 올라가 철야 기도를 하기로 했는데, 올라가기 전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다가 스스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절대 서로의 기도를 중단시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기도는 열흘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걱정이 된 교인들이 찾아 올라가 보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이용도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양으로 불타올라 매일 거리에 나가 전도를 하고, 교우들의 가정을 돌보며, 병자와 거지를 돕고, 마을에 우물을 파고, 예배당을 수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을 능력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사야 37장 14절 이하의 말씀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유다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앗수르의 산헤립에게 항복을 하고 공물까지 바쳤습니다. 하…
    왜관감리교회
    2020-01-18
    제사장 아론에게는 네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입니다. 그들은 7일에 걸쳐 성결의식과 위임예식을 마친 다음 제사장으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10장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제사장이 된 네 명의 아들 중에서 장남과 차남인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제사장의 첫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성소 안에 분향을 하러 들어갔는데, 향로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하신 다른 분’을 담아 갔다가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분이 그들을 삼켜 모두 죽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나답과 아비후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첫 제사를 드리다가 생명을 잃게 된 것일까요? 첫째로, 나답과 아비후가 죽음의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막 안에는 향을 피우는 분향 단이 있었는데, 향을 피울 때에는 반드시 번제 단에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여호와의 불’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
    왜관감리교회
    2020-01-11
    한 초로의 노인이 대학가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인을 피하는데 한 학생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직도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믿으세요?” 노인은 학생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학생이 원한다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 대신 포도주를 물로 변화시키신 기적을 당장에라도 보여 주겠네.” 학생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디 한번 보여 주시지요.”고 했습니다. 노인은 웃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 길 건넛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집시 스미스를 아느냐고 물어보게나. 그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던 악명 높은 알코올 중독자임을 증언할 것이네. 그는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술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사람이라네. 그런데 그가 지금은 술 대신 물만 마시며 살고 있다네. 물만 마시고도 술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면서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네. 그가 바로 자네 앞에 …
    왜관감리교회
    2020-01-04
    최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순례길이 있습니다. 이동 거리가 약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 것은 이제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비롯한 그의 소설들을 통해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녀온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긴 순례 길에서 길 친구는 매우 의지가 되어 낯선 여행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염려로 힘을 보내 여행을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한 해의 여정을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좋은 길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면 더욱 좋습니다. 올해도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과거에도 우리를 함께하시며 건지셨고 현재도 동행하고 계시며 이후에도 임마누엘로 동행하시며 건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관감리교회
    2019-12-28
    한 해를 보내면서 어니스트 헤밍훼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노인은 이틀 밤낮을 씨름한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포획의 기쁨도 잠시, 이미 녹초가 된 노인의 배 주변으로 상어들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그 잔인하고 끈질긴 이빨들의 공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청새치의 머리와 뼈, 꼬리만 달랑 매달고 간신히 해안가로 다가서는 작은 배 안에서 노인은 소리칩니다. “난 진 게 아니야. 다만 너무 멀리 나갔다 왔을 뿐이야.” 그러나 얼마 후 자신을 돌보러 온 소년 마놀린에게 노인은 말합니다. “마놀린, 내가 놈들에게 지고 말았단다. 정말 철저하게 지고 말았어.” 내가 그렇게 매달리고 노력했던 것이 허무하게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노인의 청새치가 상어들의 이빨에 거덜 나듯이 우리의 시간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충격, 염려, 스트레스에 물어 뜯겨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 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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