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REE VISION OF WAEGWAN METHODIST CHURCH
"열정, 나눔, 행복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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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관감리교회
    2020-01-24
    감리교회 신앙인으로 기도의 본을 보여 준 이용도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 친구와 함께 산에 올라가 철야 기도를 하기로 했는데, 올라가기 전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다가 스스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절대 서로의 기도를 중단시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기도는 열흘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걱정이 된 교인들이 찾아 올라가 보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이용도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양으로 불타올라 매일 거리에 나가 전도를 하고, 교우들의 가정을 돌보며, 병자와 거지를 돕고, 마을에 우물을 파고, 예배당을 수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을 능력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사야 37장 14절 이하의 말씀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유다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앗수르의 산헤립에게 항복을 하고 공물까지 바쳤습니다. 하…
    왜관감리교회
    2020-01-18
    제사장 아론에게는 네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입니다. 그들은 7일에 걸쳐 성결의식과 위임예식을 마친 다음 제사장으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10장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제사장이 된 네 명의 아들 중에서 장남과 차남인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제사장의 첫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성소 안에 분향을 하러 들어갔는데, 향로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하신 다른 분’을 담아 갔다가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분이 그들을 삼켜 모두 죽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나답과 아비후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첫 제사를 드리다가 생명을 잃게 된 것일까요? 첫째로, 나답과 아비후가 죽음의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막 안에는 향을 피우는 분향 단이 있었는데, 향을 피울 때에는 반드시 번제 단에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여호와의 불’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
    왜관감리교회
    2020-01-11
    한 초로의 노인이 대학가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인을 피하는데 한 학생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직도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믿으세요?” 노인은 학생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학생이 원한다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 대신 포도주를 물로 변화시키신 기적을 당장에라도 보여 주겠네.” 학생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디 한번 보여 주시지요.”고 했습니다. 노인은 웃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 길 건넛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집시 스미스를 아느냐고 물어보게나. 그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던 악명 높은 알코올 중독자임을 증언할 것이네. 그는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술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사람이라네. 그런데 그가 지금은 술 대신 물만 마시며 살고 있다네. 물만 마시고도 술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면서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네. 그가 바로 자네 앞에 …
    왜관감리교회
    2020-01-04
    최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순례길이 있습니다. 이동 거리가 약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 것은 이제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비롯한 그의 소설들을 통해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녀온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긴 순례 길에서 길 친구는 매우 의지가 되어 낯선 여행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염려로 힘을 보내 여행을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한 해의 여정을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좋은 길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면 더욱 좋습니다. 올해도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과거에도 우리를 함께하시며 건지셨고 현재도 동행하고 계시며 이후에도 임마누엘로 동행하시며 건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관감리교회
    2019-12-28
    한 해를 보내면서 어니스트 헤밍훼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노인은 이틀 밤낮을 씨름한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포획의 기쁨도 잠시, 이미 녹초가 된 노인의 배 주변으로 상어들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그 잔인하고 끈질긴 이빨들의 공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청새치의 머리와 뼈, 꼬리만 달랑 매달고 간신히 해안가로 다가서는 작은 배 안에서 노인은 소리칩니다. “난 진 게 아니야. 다만 너무 멀리 나갔다 왔을 뿐이야.” 그러나 얼마 후 자신을 돌보러 온 소년 마놀린에게 노인은 말합니다. “마놀린, 내가 놈들에게 지고 말았단다. 정말 철저하게 지고 말았어.” 내가 그렇게 매달리고 노력했던 것이 허무하게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노인의 청새치가 상어들의 이빨에 거덜 나듯이 우리의 시간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충격, 염려, 스트레스에 물어 뜯겨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 때도 …
    왜관감리교회
    2019-12-21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생명과 평화의 정의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여전히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엄마의 따스한 사랑과 품이 필요하듯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700여 년 전의 유대 땅도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범했고,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짓밟히고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징계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간 백성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서서 성전을 그리워하며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예루살렘 시민에게 다정스레 일러라. 이제 복역기간이 끝났다고, 그만하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여호와의 손에서 죄벌을 곱절이나 받았다고 외쳐라.”(사40:1~2…
    왜관감리교회
    2019-12-14
    오늘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한 해 교회력은 강림절로 시작합니다. 이는 주님을 기다리는 희망이 참 생명의 출발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승천하셨기에 우리 신앙은, 언제나 그리고 온통, 주님의 오심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앙이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사도 야고보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이 기다림의 비밀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 놓고 열매를 바라며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처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농부처럼 기다리는 것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농부도 기다리는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가지를 치는 등 땀을 흘리면서 일합니다. 즉 진정…
    왜관감리교회
    2019-12-07
    기독교 영성의 기본은 기독교 신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마음에 새겨진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성경에서 ‘암송’과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단어는 ‘하가’와 ‘씨아흐’입니다. 이는 ‘읊조리다. 되새기다.’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려면 그 말씀을 반복하여 암송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양이 내 안에 풍성해지면 죄에서 멀어지고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이 생겨납니다. 또한 믿음의 담력이 생겨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주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주님을 더 잘 섬기게 됩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방법은 짧은 구절을 암송하는 방법과 말씀카드를 이용하는 방법, 산상수훈과 사랑장 등 특별한 주제를…
    왜관감리교회
    2019-11-30
    미국 네바다 사막에는 성장 과정과 생존 방법이 전혀 다른 두 종의 나무가 있습니다. 텀블위즈와 조슈아 트리입니다. 텀블위즈는 축축한 곳을 만나면 실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습기가 없어지면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습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생존하는 잡초 같은 나무입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느라고 텀블위즈는 크게 자라지 못하고 공처럼 둥글둥글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조슈아 트리는 심겨진 곳에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생존하는데, 나무에 따라 뿌리가 11m까지 뻗는다고 합니다. 비록 1년에 3.8cm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 수백 년, 천 년 이상을 생존하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오늘날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텀블위즈처럼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 시험과 고난 앞에서 환경과 감정의 영향을 받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닙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니까 좀처럼 신앙이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
    왜관감리교회
    2019-11-23
    가나안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제비뽑기로 각 지파의 땅을 분배했습니다. 요셉의 후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는 그중 비옥하고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므나셋 반 지파는 이미 요단 강 동쪽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의 후손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된 자신들에게 왜 한 몫의 땅만을 주느냐고 불평하며 더 많은 땅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큰 민족이 되어 분배된 땅이 좁다면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숲으로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후손은 그 숲은 넉넉하지도 않고 그곳 사람들은 철 무기로 무장해서 안 된다며 거절했습니다.  요셉의 후손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고 하고는, 바로 이어 숲속 사람들은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에 숲을 개척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왔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
    왜관감리교회
    2019-11-16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슈클로프스키가 예술 창작이론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일상적으로 접하는 익숙한 상황도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듯 낯설게 바라보아 다시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무감각해지고 자기가 편한 쪽으로만 반응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주변 상황이나 현상에 익숙해지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을 낯설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집에서 자고 일어났습니다. 집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아침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요? 숨을 쉬며 햇빛 속에서 살아갑니다. 숨을 쉴 수 있고 태양이 있다는 것이 모두 당연한 것일까요? 신약성경 마가복음 3장 1절~5절 말씀은 안식일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
    왜관감리교회
    2019-11-09
    구약성경 민수기 6장 22절~27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을 마치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기 위해 준비하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관심과 남다른 애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굴을 비추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얼굴을 드심으로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4절)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본문이 세 번이나 강조하듯이, 그 복이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은 ‘여호와 하나님 자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첫째, 지키심의 복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이고 밤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닥쳐오고 온갖 위험이 생명을 위협하는 광야 길을 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보고…
    왜관감리교회
    2019-11-02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과 망각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우선 겸손합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몹시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자신이 사도가 되어 주의 일을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언제나 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어도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바울처럼 겸손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면 교만해집니다. 우리는 다른 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사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압니다. 어느 분이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자기 고향을 찾아온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어려운 시절을 살던 때였지만 귀한 음식을 준비하여…
    왜관감리교회
    2019-10-26
    유다 왕 여호사밧은 BC 872에 왕위에 올라 BC 848년까지 25년간 남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다윗의 경건한 모습을 본받아 살았는데, 특별히 아버지 아사 왕 말년의 타락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여호사밧의 종교개혁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이었습니다. 하나는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모든 우상 숭배를 척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에게 율법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남 유다 백성이 진정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상이나 산당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알아 중심으로부터 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여호사밧의 개혁은 남 유다에 영적 부흥을 가져왔고, 이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분열 왕국 시대 최고의 영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대 하 17장 3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
    왜관감리교회
    2019-10-19
    미국 인디언족인 체로키 부족에게는 ‘손자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모든 사람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둘은 늘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한 늑대는 악하지. 이 늑대는 분노와 질투, 용서하지 않는 마음, 교만, 후회, 분노, 열등감, 거짓, 게으름,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 있어. 반면에 다른 늑대는 착하단다. 이 늑대는 사랑과 친절, 겸손과 절제, 희망과 용기, 끈기와 인내를 가진 늑대란다. 이 두 마리의 늑대가 우리 마음 안에서 늘 끊임없이 싸우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자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지.” 우리는 늘 자신의 내면에서 상반된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성령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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