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REE VISION OF WAEGWAN METHODIST CHURCH
"열정, 나눔, 행복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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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관감리교회
    2019-12-07
    기독교 영성의 기본은 기독교 신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마음에 새겨진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성경에서 ‘암송’과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단어는 ‘하가’와 ‘씨아흐’입니다. 이는 ‘읊조리다. 되새기다.’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려면 그 말씀을 반복하여 암송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양이 내 안에 풍성해지면 죄에서 멀어지고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이 생겨납니다. 또한 믿음의 담력이 생겨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주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주님을 더 잘 섬기게 됩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방법은 짧은 구절을 암송하는 방법과 말씀카드를 이용하는 방법, 산상수훈과 사랑장 등 특별한 주제를…
    왜관감리교회
    2019-11-30
    미국 네바다 사막에는 성장 과정과 생존 방법이 전혀 다른 두 종의 나무가 있습니다. 텀블위즈와 조슈아 트리입니다. 텀블위즈는 축축한 곳을 만나면 실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습기가 없어지면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습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생존하는 잡초 같은 나무입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느라고 텀블위즈는 크게 자라지 못하고 공처럼 둥글둥글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조슈아 트리는 심겨진 곳에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생존하는데, 나무에 따라 뿌리가 11m까지 뻗는다고 합니다. 비록 1년에 3.8cm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척박한 사막에서 수백 년, 천 년 이상을 생존하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오늘날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텀블위즈처럼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 시험과 고난 앞에서 환경과 감정의 영향을 받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닙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니까 좀처럼 신앙이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
    왜관감리교회
    2019-11-23
    가나안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제비뽑기로 각 지파의 땅을 분배했습니다. 요셉의 후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는 그중 비옥하고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므나셋 반 지파는 이미 요단 강 동쪽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의 후손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된 자신들에게 왜 한 몫의 땅만을 주느냐고 불평하며 더 많은 땅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큰 민족이 되어 분배된 땅이 좁다면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숲으로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후손은 그 숲은 넉넉하지도 않고 그곳 사람들은 철 무기로 무장해서 안 된다며 거절했습니다.  요셉의 후손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이 되었다고 하고는, 바로 이어 숲속 사람들은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에 숲을 개척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왔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을 …
    왜관감리교회
    2019-11-16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슈클로프스키가 예술 창작이론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일상적으로 접하는 익숙한 상황도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듯 낯설게 바라보아 다시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무감각해지고 자기가 편한 쪽으로만 반응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주변 상황이나 현상에 익숙해지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을 낯설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집에서 자고 일어났습니다. 집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아침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요? 숨을 쉬며 햇빛 속에서 살아갑니다. 숨을 쉴 수 있고 태양이 있다는 것이 모두 당연한 것일까요? 신약성경 마가복음 3장 1절~5절 말씀은 안식일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
    왜관감리교회
    2019-11-09
    구약성경 민수기 6장 22절~27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을 마치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기 위해 준비하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관심과 남다른 애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굴을 비추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얼굴을 드심으로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4절)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본문이 세 번이나 강조하듯이, 그 복이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은 ‘여호와 하나님 자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첫째, 지키심의 복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이고 밤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닥쳐오고 온갖 위험이 생명을 위협하는 광야 길을 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보고…
    왜관감리교회
    2019-11-02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과 망각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우선 겸손합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몹시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자신이 사도가 되어 주의 일을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언제나 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어도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바울처럼 겸손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면 교만해집니다. 우리는 다른 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사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압니다. 어느 분이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자기 고향을 찾아온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어려운 시절을 살던 때였지만 귀한 음식을 준비하여…
    왜관감리교회
    2019-10-26
    유다 왕 여호사밧은 BC 872에 왕위에 올라 BC 848년까지 25년간 남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다윗의 경건한 모습을 본받아 살았는데, 특별히 아버지 아사 왕 말년의 타락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여호사밧의 종교개혁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이었습니다. 하나는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모든 우상 숭배를 척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에게 율법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남 유다 백성이 진정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상이나 산당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알아 중심으로부터 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여호사밧의 개혁은 남 유다에 영적 부흥을 가져왔고, 이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분열 왕국 시대 최고의 영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대 하 17장 3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
    왜관감리교회
    2019-10-19
    미국 인디언족인 체로키 부족에게는 ‘손자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모든 사람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둘은 늘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한 늑대는 악하지. 이 늑대는 분노와 질투, 용서하지 않는 마음, 교만, 후회, 분노, 열등감, 거짓, 게으름,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 있어. 반면에 다른 늑대는 착하단다. 이 늑대는 사랑과 친절, 겸손과 절제, 희망과 용기, 끈기와 인내를 가진 늑대란다. 이 두 마리의 늑대가 우리 마음 안에서 늘 끊임없이 싸우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자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지.” 우리는 늘 자신의 내면에서 상반된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성령의 소…
    왜관감리교회
    2019-10-12
    누구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앞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이라며 매주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복을 쫓아다닌다고 해서 복이 내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셔야 합니다. 시편 24편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입니까?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사람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손이 깨끗하다 것은 정결한 사람을 뜻하며,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의로운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또한 허탄한 생각을 하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으며, 이익을 위해 거짓 행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자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예배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이 복의 문을 여는 사람임을 …
    왜관감리교회
    2019-10-05
    신약성경 디모데전서 5장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 자인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교회를 치리하는 것과 관련된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연로하신 남자 어르신은 아버지로, 젊은이는 형제로, 연로하신 여자 어르신은 어머니로, 젊은 여자는 자매로 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의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처럼 대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교회에 새로운 성도가 출석을 하게 되고 새 가족으로 등록을 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기존의 성도들이 이런 저런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서 새 가족의 입장에서는 교회가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구나 하는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지만 시간이 좀 지나게 되면 성도들의 관심이 좀 무디어지면서 어느새 가족처럼 느꼈던 감정들이 식어들게 되면서 갖…
    왜관감리교회
    2019-09-28
    한 목사님이 다른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낯선 도시로 갔습니다. 근처까지 갔는데도 교회 건물이 보이지 않자 목사님은 지나가는 노인에게 교회 위치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바로 뒤에 놔두고도 모르냐면서 손가락으로 저 너머를 가리켰습니다. 목사님은 감사 인사를 하며 노인에게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어 교회에 오시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꾸했습니다. “바로 뒤에 있는 교회도 모르면서 천국 가는 길을 어떻게 알아?” 바로 그 길을 알려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성서를 잘 아는 성경학자, 말씀을 잘하시는 랍비,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분, 사치나 겉멋을 위한 몸치장 옷단장을 안 하신 분, 사회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인 죄인과 언제나 함께 하신 죄인의 동반자.” 로저 테넌트 선교사는 그의 책 [참 인간의 길]에서 예수님의 위대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왜관감리교회
    2019-09-21
    예레미야 24장의 말씀을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개의 광주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광주리들이 성전 앞에 놓여 있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아주 좋은 무화과가 담겨져 있었고, 다른 광주리에는 상태가 너무 나빠 먹을 수조차 없는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두 개의 광주리에 담긴 서로 다른 무화과에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좋은 무화과를 두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잘 돌볼 것이라.” 그리고 나쁜 무화과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과 이집트 땅에 사는 자들은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같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간 일은 괴롭고도 슬픈 형벌이었습니다. 그런 아픔과 혼란 중에서도 용케 예루살렘에 남거나 이집트로 도망친 이들은 천만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주님의 은혜로 생각하며 붙잡혀간 이…
    왜관감리교회
    2019-09-13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이웃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웃집 주인은 아이에게 인사를 하며 사과를 한 개 건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해야지.”하며 인사를 시킵니다. 그런데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엄마가 대신 해!” ‘교육’은 한자로 ‘가르칠 교’(敎)에 ‘기를 육’(育)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가르치고 기르는 행위의 결합이라는 뜻입니다. ‘교’(교)가 ‘학습’이라면, ‘육’(육)은 ‘돌봄’입니다. 학습을 통해 지적으로 충만해지고, 돌봄을 통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학습만 있고 돌봄이 없는 기형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사역을 하는 교목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듣게 되는 가장 슬픈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필요 없는 공부’ 혹은 ‘필요 없는 과목’이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당…
    왜관감리교회
    2019-09-07
    79세 할아버지가 평생 잊지 못할 꿈을 꿨다고 합니다. 군 시절에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 병이 80세의 모습으로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당장 이리로 뛰어오라고 소리치는데, 비록 꿈이지만 정말 무섭더랍니다. ‘군대’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계급, 질서, 규율, 단체, 조직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입대하는 꿈은 악몽이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십분 공감하게 됩니다. 문득 우리가 꿈꾸는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읽을 때 우리는 대부분 달란트에 초점을 맞춥니다. 받은 달란트의 수와 이익으로 남긴 수를 셉니다.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한 달란트 가진 종에게 화가 난 이유는 더 많이 남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
    왜관감리교회
    2019-08-31
    구약성경 이사야 49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치 엄마가 아이를 태중에서부터, 그리고 태어난 후 젖 먹이고 양육하며 품속에서 놓지 않고 돌보는 모성애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제한적인 모성애가 아닌 초월적인 모성애입니다. 이사야서 49장의 말씀을 읽어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다가 자녀임을 확인하고, 회복과 실현에서 감탄의 구조로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나갑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시온(유다 백성)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젖먹이를 둔 엄마가 아이를 잊지 않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시온을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합니다. 이는 항상 가까이하여 지켜보신다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모성애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시27:10, 새 번역)라는 구절로 드러냅니다.  17절에서부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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